100일 새벽 묵상

2023.06.04. 앞장서지 말고 등 뒤에서

나살자(나부터 살자/ 나를 살리는 자원) 2023. 6. 4.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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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장서지 말고 등 뒤에서


어떤 가족모임의 협심자가 말하기를 "우리가 도박중독자와 살아가는 데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라고 말한다. 물론 용기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생활하면서 처하게 되는 어떠한 환경에서도 용기가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에게는 그 어떤 상황도 우리에게 절망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는, 또한 절망에 빠질 원인에 대해서 다른 사람에게 불평하는 충동을 이겨내기 위해 용기가 필요하다. 
도박중독자의 책임을 대신 짊어지는 것은 회복에 방해가 된다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우리가 도박중독자의 책임을 대신 짊어질 유혹을 극복하기 위해서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 있는 사람으로 보여 주위의 사람들에게서 동정심을 바라는 사람들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도 용기가 필요하다. '용감한 여자'는 아마도 이기적인 자기 연민으로 위안을 얻을 수 있을는지는 몰라도 그것으로 인해 자신의 개성을 약화시키고 존엄성을 파괴하게 될 것이다.


위에서 말하는 용기, 결국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솔직하되 누군가를 탓하지 않으면서
절망하지 않는 것이리라.
세상사 말은 쉬운데 막상 실전으로 들어가면 쉽지 않다.
 
어제 큰애가 살던 집이 만기라서 짐을 다 뺐다. 그전에 가서 일부 정리하고 구치소 면회 가서 짐을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물어서 일단 짐을 다 빼기로 한 것이다. 처음으로 집 나가서 8년간 내리 살던 집이었는데 그동안 올려주기로 한 월세, 관리비가 밀려 그 액수가 상당했다. 이미 예상했던 일이라 처음부터 전세권설정등기를 해 둔 것인데 그러지 않았다면 이 돈도 다 날렸을 것이다. 전세가 귀해 구하러 다니느라 애를 먹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는 생각에 그랬었는데, 그나마 미수금 제하고 돌려받을 돈이 남아있어서 다행이다.

그런데

짐을 정리하면서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그 흔적들을 보게 되면서 얼마나 한숨이 나오고 마음이 아프던지. 가끔씩 집에 와서 집밥을 먹고 가고 옷은 깔끔하게 입고 다니는 편이라 잘 몰랐던 것 같다, 이 정도인 줄은. 

남편은 허리를 다쳐 계속 물리치료를 받는 중이라 결국 정리는 내몫이었는데 도저히 혼자 하는 게 무리라 둘째에게 SOS를 쳤다. 사실 짐이랄 것도 없다. 챙길 것보다 버릴 게 더 많았다. 가끔씩 가서 청소라도 '같이' 했어야 했는데... 돌봄이 필요한 '도박이라는 병에 걸린 어린아이'인데...  겉은 멀쩡한 성인이라서 또 깜빡! 한 것이다.

다음 집을 구해야 하는 문제로 한동안 남편과 의논했었지만 일단 아들이 밖으로 나올 때쯤 본인의 의사에 따라 결정하기로 했다. 잠정유보.

"우리가 앞장서지는 맙시다. 우리는 그냥 뒤에 서 있어야 하는 거지."


아들은 지금처럼 핸드폰 안하고 지낼 수 있는 곳이 있으면 그런 곳에 가고 싶다고 말한다. 얼마나 도박하느라 힘들었으면 구치소에 있는 모습이 더 편안해 보일까. 10년 동안 본 얼굴 중에서 가장 좋아 보이는 얼굴이니 말이다. 그래서 난 차라리 안심이 된다. 남편은 조금 달랐다. 선을 넘은 이 상황에서 생각이 멎고 마음이 닫힌다고 하며 한동안 괴로워했고 머리로는 정리가 되지만 마음은 힘들다고 했다. 나도 속으로 이런게 오히려 익숙하고 편안해질까 봐 염려가 되었는데 남편도 그랬나 보다. 

미리 걱정할 일이 아니라서 일단 여기까지! 

 
"주님, 이 가련한 영혼을 돌보아 주소서.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당신만이 하실 수 있으니 두 손 모아 간구하나이다."

아침 햇살처럼 환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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