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닥토닥 마음 돌봄

박완서의 내면일기/한 말씀만 하소서. 하필이면... 내가 뭐관대

나살자(나부터 살자/ 나를 살리는 자원) 2023. 12. 12.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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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1988년 5남매 중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었다. 25년 5개월 동안이나 행복을 가져다 주었던 존재가 사라진 것이다. 그녀의 애끓는 심정이 고스란히 담긴 일기가 있다. 일기의 주인공은 바로 소설가 박완서다.
 
그녀의 일기는 1990년 9월부터 1년간 [생활성서]에 연재되었다. 그리고 한 권의 책이 되었다. <한 말씀만 하소서> 

 
한 말씀만 하소서
작가 박완서가 아들의 죽음을 겪으면서 기록한 일기 <한 말씀 하소서>가 새로운 모습으로 출간되었다. 가톨릭 잡지 <생활성서>에 1990년 9월부터 1년 간 연재했던 것을 <세계사>의 "박완서 소설전집"에 포함시켜 펴낸 바 있다.   자식을 잃은 어미로서의 참척의 고통과 슬픔, 이를 감내해가는 과정을 날것 그대로 가식없이 풀어냈으며, 자기 자신과 신에 대한 고백의 형식을 띠고 있어 그 절절함이 더하다. '통곡 대신 미친 듯이 끄적거린' 것이라는 저자의 일기에는 앞세운 아들에 대한 비통함과 그리움, 저자 자신이 겪고 있는 극한의 고통과는 무관하게 돌아가는 무정한 세상에 대한 분노, 생명을 주관하는 신에 대한 저주가 뒤섞여 있다. 이러한 분노와 저주, 절규는 존재의 한계성에서 벗어날 수 없는 나약한 우리 모두의 고백으로 되돌아온다. 이 일기문에서 받는 이같은 감동은 처참함과 비통 속에서도 삶과 죽음, 절대자에 대한 성찰을 보여주며 세상으로부터 도피하고자 하였던 저자가 다시 세상으로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을 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자는 그가 이 고통과 절망 속에서 이룩한 성찰의 깊이와 인식의 폭에 숙연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적절히 배치된 판화 제작된 삽화 역시 여백미와 압축미를 살려 저자의 고통과 절망에 찬 시간을 형상화하면서도 따뜻한 색감으로 글의 감동을 더욱 배가시킨다.
저자
박완서
출판
세계사
출판일
2004.12.24

 


 

교만의 대가로 받은 벌?

 "에미 눈에 자랑스럽지 않은 자식이 어디 있을까마는 자식들마다 건강하고 공부 잘해 한 번도 속 안 썩이고 일류 학교만 척척 들어가고 마음먹은 대로 풀릴 때, 그 에미는 기고만장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그랬었다.
 
내가 받은 벌은 내 그런 교만의 대가였을까. 하느님이 가장 싫어하는 게 교만이라니 나는 엄중하지만 마땅한 벌을 받은 것이었다." 35쪽
 
 
"그러나 교만이 꺾인 자리는 겸손이 아니라 황폐였다." 36쪽
 

그저 만만한 건 신이었다.

"내가 교만의 대가로 이렇듯 비참해지고 고통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치자. 그럼 내 아들은 뭔가. 창창한 나이에 죽임을 당하는 건 가장 잔인한 최악의 벌이거늘..." 36쪽
 
"온종일 신을 죽였다. 죽이고 또 죽이고 일백 번 고쳐 죽여도 죽일 여지가 남아있는 신. 중오의 마지막 극치인 살의, 내 살의를 위해서라도 당신은 있어야 해." 48쪽
 
 
과음, 혼미, 통곡, 수면제, 눌은밥, 멍함, 토악질....  얼마나 괴로웠을까.
 

주님과 한번 맞붙어보려고 분도수녀원에서 

"주님, 당신은 과연 계신지, 계시다면 내 아들은 왜 죽어야 했는지, 내가 이렇게까지 고통을 받아야 하는 건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 말씀만 해보라고 애걸하리라.
애걸하고 안되면 따지고 덤비고 쥐어뜯고 사생결단을 하리라. 나는 방바닥으로 무너져 내렸고 몸부림을 쳤다." 102쪽

 

왜 당신이라고 그런 일을 당하면 안 되는가?

 "남동생이 어찌나 고약하게 구는지 집안이 편할 날이 없었다고 한다. 왜 하필 내 동생이 저래야 되나? 비판도 되고 원망스럽기도 하다가 어느 날 문득 세상엔 속 썩이는 젊은이가 얼마든지 있다. 내 동생이라고 해서 그래서는 안되란 법이 어디 있나? 내가 뭐 관대...라고 생각을 고쳐먹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고 동생과의 관계도 호전이 되더라고 했다." 126쪽에 나오는 자신의 막내딸보다도 어린 수녀님의 이야기를 엿듣고 저자는 "구원의 실미라가 바로 거기 있을 것 같았다."라고 적고 있었다.
 
그렇다! 
이 지점에서 나도 실마리를 발견했다. "내가 뭐 관대..." 내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을 때, 내 상황을 부정하고 외면하고 도망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을 때 내가 도달했던 지점이 바로 여기였다. 

 

밥이 되어라, 밥이 되어라.

 "주님은 끝내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어쩌면 나직하고 그윽하게 뭐라고 하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늦게 난 철처럼 슬며시 왔다.
그래, 분명히 뭐라고 그러셨을 거야. 다만 내 귀가 독선과 아집으로 꽉 막혀 못 알아들었을 뿐인 것을. 하도 답답해서 몸소 밥이 되어 찾아오셨던 거야. 우선 먹고살아라 하는 응답으로. 그렇지 않고서 그 지경에서 밥냄새와 밥맛이 그렇게 감미로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167쪽
 
 

홀로서기는 혼자가 아니었기에 

"다시 글을 쓰게 됐다는 것은 내가 내 아들이 없는 세상이지만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는 증거와 다르지 않다는 것도 안다. 내 아들이 없는 세상도 사랑할 수가 있다니..." 173쪽
 
 

주여
저에게 다시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주여
너무 집착하게는 마옵소서.

<한 말씀만 하소서> 마지막 문장






하필이면 내게...
 
내가 뭐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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