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새벽 묵상

2023.05.02.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은

나살자(나부터 살자/ 나를 살리는 자원) 2023. 5. 2.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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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은

이 이야기는 도박중독자의 가정에 도움을 주고자 자기의 인생을 헌신했던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중략)

그는 모여있는 가족모임 협심자에게 매우 감동적이고 희망적인 연설을 해 주었다. 모든 사람들도 그 사람의 개인적인 슬픔을 초월하는 능력에 매우 경탄했으나 자신의 슬픔을 희망을 주는 이야기로 바꿨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루하루에 살자>

갑자기 불어닥친 불행

누구나 자신에게 닥친 불행, 어려움에 대해 저항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럴 리가 없어, 그럴 수가 없어, 그래도 다 괜찮아질 거야.

그러다가도 해결이 쉽지 않으면 불안하고 화가 났다.

그렇게 끌탕을 하며 자책하고 신을 향해 원망을 하다 그것도 모자라 흥정을 하고... 그러다 결국 항복하고 말았다.
도저히 내가 감당할 수 없으니 도와달라고. 내 마음만이라도 붙잡아달라고.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마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연년생 오빠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나에게 분명하게 보여주고 가르쳐주었던 그 쓰라린 과정도 그랬듯이.

 

퀴블러 로스의 죽음이론


저명한 죽음학자가 말하는 부정 denial - 분노 anger - 타협 bargaining - 우울 depression - 수용 acceptance이라는 죽음 5단계를 거치는 과정하고 비슷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문제를 부정하고 회피하면 할수록 받아들이는 과정은 힘들고 길어진다는 점이다.

내가 그랬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도박은 완치가 불가능한 병이라는 것을. 그때는 그랬다.


지금 그렇지 않다. 받아들이지 않고는 살 수 없었으니까 받아들인 것이고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 와서 보니 번뇌 즉 보리!

불행, 어려움이 깨달음으로 가는 과정이었다.

번뇌 즉 보리 煩惱即菩提!

 

괴롭다고 해서

불행한 것은 아니라서

이 시간

버티는 수밖에

살아있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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