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에 살자 100일 묵상

86/고난은 자랑이 아니다

나살자(나부터 살자/ 나를 살리는 자원) 2024. 4. 17. 0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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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중독자가 도박에 빠져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몹시 격렬해져서 자신의 존엄성과 품위를 잃어버리고 말았을 때, 이처럼 어쩔 수 없이 되어 버린 창조물도 우리의 동정이 필요하고 몹시 상처 입어 감정이 예민해져 죄의식에 병들어 있는 신의 자녀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어렵긴 하지만 우리 자신의 향상을 위해서 도박중독자들이 병에 시달릴 때, 그들에게 보였던 우리의 태도를 고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루하루에 살자 4월 17일-
완연한 봄

내가 좋아하는 박노해의 詩


고난은 자랑이 아니다

 

고난은 싸워 이기라고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역경은 딛고 일어서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좌절은 뛰어넘으라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맑은 눈 뜨라고!
 
고통을 피하지 말고
맞서 싸우려들거나
빨리 통과하려 하지 말고
오히려 고통의 심장을 파고들어
그 안에 묻힌 하늘의 얼굴을 찾으라고
 
고난을 살아낸 그대여
그것은 장한 인간 승리이지만
맑은 눈 뜨지 못하면,
철저히 무너지고 깨어져내려
먼지만큼 작은 자신의 실상을 보지 못하면,
내세운 정의와 진리 속에 숨어 있는
자신의 참모습을 보지 못하면,
 
고난을 뚫고 나온 자랑스러운 그대 역시
또 하나의 덫입니다 슬픔입니다
고난을 온몸으로 끌어안고 승화시킨 사람이 아니라면
생의 가장 깊은 절망과 허무의 바닥에서
맑은 눈으로 떠오른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 앞에 비추이는 희망의 사람이 아닙니다
 
행여 제가 고난 받았다고 얼굴을 들거든 침을 뱉어주십시오
고난 받았기에 존경받는다면 그것은 나의 치욕입니다
슬픈 일이지만, 고난이 나를 키웠고 고난이 나를 깨우쳤고
고난 속에서 나는 사랑을 배웠고 그대를 만났습니다
아아 나에게 고난은 자랑이 아니라 아름다운 슬픔입니다

박노해 시집

 
우리가 알고 있는 박노해의 본명은 박기평이다.

朴勞解라는 필명은 '박해받는 노동자의 해방'에서 앞글자를 따온 것이다. 이것은 독재정권의 감시를 패해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기도 했다. 노동자가 노동자의 입장에서 쓴 최초의 시 '시다의 꿈' 그리고 시집  <노동의 새벽> 출간된 80년대. 당시 대학생이던 나는 '얼굴 없는 시인'으로 불렸던 그가 궁금했었고 詩를 모은 책이 금서가 되는 어이없는 상황이 무섭기까지 했더랬다.

사람만이 희망이다

내가 알고 있던 박노해는 가스발이었다.

<사람만이 희망이다> 책을 펴면 첫 장에 당시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이었던 김수환 추기경의 추천사가 눈에 들어온다. 시인의 아버지가 판소리 가수였고 어머니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다는 것을 그때 알았는데 그의 시가 왜 기도 같았는지도 알게 되었다.

노동운동가, 얼굴 없는 시인, 무기수, 민주화운동유공자...
그는 지금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라며 비영리 사회운동단체 <나눔 문화>를 설립(2000년), 반전평화운동을 펼치고 있고 여전히 시를 쓰고 사진을 찍고 있다.


지금도 부암동 '라 카페 갤러리'에서 열렸던 첫 사진전 <라 광야>에서 그의 깊은 내면이 담긴 사진에 감동을 받은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통의동으로 옮겨왔다는 '라 카페 갤러리'에도 가보고 올초에 출간된 자전수필 <눈물꽃 소년>도 읽어보고 싶다, 이제 내 마음에도 여유가 좀 생겼으니.
 

고난을 온몸으로 끌어안고 승화시킨 사람이 아니라면
생의 가장 깊은 절망과 허무의 바닥에서
맑은 눈으로 떠오른 사람이 아니라면

사람만이 희망이다
눈물꽃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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