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에 살자 100일 묵상

67/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을 때

나살자(나부터 살자/ 나를 살리는 자원) 2024. 3. 29.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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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든 것을 다 다 갖추고 있지 않다. 나는 모든 해답을 알지는 못한다. 사실상 그 대답들은 내가 그것을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을 때 내게 나타난다.

-하루하루에 살자 3월 29일-
아니 벌써. 냉이꽃? 과 제비꽃

병은 하나여도 처방은 수백 가지

갬아넌 가족모임에 참석했던 어느 날, 모임이 끝나고 잔치가 있었다. 단도박 100일이면 100일 잔치, 단도박 1년이면 1년 잔치... 이런 식으로 하는데 당사자는 소감문을 발표하며 자기 고백을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축하하며 격려하는 자리다. 그날 옆자리에 앉은 한 협심자가 들려준, 병은 하나여도 처방은 수백 가지라는 말이 떠올랐다.
저마다의 성격적 특성과 개성과 처한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도박병을 앓고 있어도 처방은 다르다는 게 맞는 말 같았다. 나도 모르게 잔치 때마다 온마음을 기울이게 되는 것이 도박병을 단번에 낮게 할 무엇을 찾고자 하는 무의식이 작용하는 것만 같다. 직방으로 나을 약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오랫동안 나는 목디스크로 인한 어깨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 약도 먹고 물리치료도 받고 이것저것 해봐도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결국 일상생활 속에서 취하는 자세를 바로 잡고 제대로 된 운동을 꾸준히 하면서부터 조금씩 통증이 가라앉고 삶의 질이 향상되었다.
이처럼 직방은 없다. 일상생활 속에서 자기에게 '적절한' 방법을 찾아 '꾸준히' 지속하는 게 직방이 되는 것이지 단번에 나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도박이라는 만성질환은 두말이 필요 없다.

 

삶을 받아들이듯 병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나와 나를 둘러싼 현실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이런 받아들임이 아니고서야 어찌 그 숱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단 말인가. 나와 나를 둘러싼 현실과 부정하면서 투쟁하는 에너지는 소모적이고 파괴적이기까지 하다. 바라고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것에 저항하면 하는 만큼 괴로워지지 않던가.
나와 나의 현실은 부정의 대상이 아니라 수용의 대상이다.
투쟁의 대상이 아니라 수용의 대상인 것이다. 나와 나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오늘 <하루하루에 살자>에서 말하는 '받아들일 자세'가 아닐까.
 

내가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을 때 해답이 내게 나타난다

나를 받아들이고 상대방을 받아들이고 현실을 받아들일 때 평온으로 가는 해답이 보이기 시작했다. 문제라고 느끼는 것과 아닌 것을 갈라서 나누지 않고 문제와 내가 한 덩어리가 될 때라야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문제라는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가야만 죽음 너머의 부활의 삶을 살게 되리란 믿음 하나로. 

 
 

성금요일 아침 <하루하루에 살자>를 묵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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